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 (문단 편집) == 역사 == 1939년 [[프란시스코 프랑코]]의 국민군이 [[스페인 내전]]에서 승리해 스페인 제2공화국이 붕괴되었고 [[프랑코 정권]]이 들어선다. 대통령인 마누엘 아사냐와 총리인 후안 네그린은 [[프랑스]] [[파리(프랑스)|파리]]로 망명했다. 내전이 끝난지 3일만인 1939년 4월 4일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가 설립되었으며, 동시에 프랑코의 국민군으로부터 자치권을 뺏기고 극심한 탄압을 받던 [[바스크]], [[카탈루냐]] 지방정부 지도자들도 파리에 바스크 망명 지방정부, 카탈루냐 망명 지방정부를 세운다. 망명정부 수립 몇달 뒤 [[제2차 세계 대전]]이 터졌다. [[나치 독일]]의 [[프랑스 침공]] 이후 정부 청사가 위치한 프랑스는 프랑코 정권에 우호적인 나치 독일의 [[프랑스 군정청]] 하에 놓인다. 그러자 정부 청사를 [[멕시코]] [[멕시코 시티]]로 이전하게 되었다. 망명정부는 프랑코 정권이 [[추축국]]에 가담할 것을 기대했고,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나치 독일과 같이 패망하면 그때 자신들이 정권을 되찾을 계획을 세웠다.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프랑코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[[중립국]]임을 표방하고 추축국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는 않았다.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망명 정부는 다시 프랑스로 되돌아간다. 1960년대부터는 스페인 내의 반프랑코 운동을 지원했으며, [[멕시코]], [[파나마]], [[과테말라]], [[베네수엘라]], [[폴란드 인민공화국|폴란드]], [[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|루마니아]], [[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|유고슬라비아]], [[헝가리 인민공화국|헝가리]], [[알바니아 인민공화국|알바니아]] 등은 스페인 공화국 망명 정부를 승인했고 수교도 한다. 반면 내전 당시 공화파를 지원해주고 프랑코에 대한 반감이 강했던 [[소련]]은 오히려 망명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다. 1975년 [[독재자]] 프랑코가 사망했다. 프랑코가 후계자로 지목한 [[후안 카를로스 1세]]는 프랑코가 부활시킨 [[전제군주제]]를 포기하고 [[다당제]]를 인정하는 등의 [[민주화]]를 추진했다. 1977년에 총선이 무사히 치러지는 것을 보고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는 스페인의 [[군주제]]를 인정하고 자진해산했으며, 망명정부 인사들은 스페인으로 돌아왔다. 후안 카를로스 1세는 [[마드리드]]의 궁전에서 식전을 열어 이들을 맞아주었으며 이 식전에서 망명정부의 주요 인사인 [[스페인 사회노동당]]의 [[펠리페 곤살레스]]와 [[https://ko.wikipedia.org/wiki/%ED%95%98%EB%B9%84%EC%97%90%EB%A5%B4_%EC%86%94%EB%9D%BC%EB%82%98|하비에르 솔라나]]가 후안 카를로스 1세를 만남으로써 반왕정 사회주의자/공화주의자들과 왕정이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했다. 이후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 구성원들 중 상당수는 1982년 총선에서 사회노동당이 승리하며 정권을 차지할 수 있었다. 다만 마지막 스페인 공화국 망명정부 총리 [[https://es.wikipedia.org/wiki/Fernando_Valera_Aparicio|페르난도 발레라]] 등 극소수 망명정부 인사들은 제2공화국 체제가 수복되지 않은 스페인을 거부한다며 귀국하지 않았다. [[분류:스페인의 역사]][[분류:망명정부]][[분류:20세기 멸망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